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Nintendo 64 (문단 편집) === 그 외 === 칩셋이 CPU, RCP, 메모리가 전부였고 2층 기판이라는 간결한 구조 덕분인지 이런 높은 사양에도 25,000엔, [[미국]]에서는 200달러라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출시되었다. 그러나 1996~1997년을 전후로 플레이스테이션도 가격을 비슷한 수준까지 내렸고, 동시 발매 게임인 [[슈퍼 마리오 64]], [[파일럿윙즈 시리즈|파일럿 윙즈 64]], 최강하부쇼기가 9,800엔이었던 반면 타사의 CD 게임은 보통 6000엔대 안팎이었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닌텐도 역시 게임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도소매상의 이익을 줄였으며, 1997년 정도에 나오는 게임들은 대부분 6,800엔을 기준으로 가격이 결정되었다. 디자인은 미국 시장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검정색 본체를 전세계 공통 디자인으로, 게임 패드만 다양한 색상으로 동시에 출시했다. 그러나 애플에서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케이스 디자인의 [[iMac G3|아이맥 G3]]를 1998년에 출시하고 이게 유행이 되면서 닌텐도도 다수의 반투명색 본체 모델을 발매했다. 4개의 컨트롤러 포트를 기본으로 채용한 덕분에 파티용 게임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패드만 들고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마리오 카트 64]], [[골든 아이(게임)|007 골든 아이]],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를 플레이한 것을 추억으로 가진 사람들도 많다. 개발 장비는 초기에 실리콘 그래픽스의 Onyx를 써야 했는데, 그 당시 최소 옵션만 10만 달러가 넘는 초고가 워크스테이션이고 미국에서도 상위급 CG 스튜디오들만 쓸 정도였다. 이 때문에 대기업 이하의 게임 회사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되었으며, 이것 역시 서드파티 이탈의 원인 중 하나였다. 시간이 흘러 5천 달러 정도였던 실리콘 그래픽스의 Indigo2 워크스테이션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에는 Partner N64라는 장비와 [[Windows 95]] 컴퓨터로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나카가와 아츠토모[* [[트레저(게임 제작사)|트레저]]의 [[레이디언트 실버건]], [[이카루가(게임)|이카루가]]에서 프로그래밍을 담당했다.]의 말에 따르면 '타사의 게임기가 개발 입문기라면 닌텐도 64는 잘 만들지 않으면 캐릭터를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했고, 이에 [[이와타 사토루]]도 동의했다.[* [[https://www.nintendo.co.jp/wii/interview/r2vj/vol1/index.html|사장님이 묻는다 죄와 벌 우주의 후계자 인터뷰]]에서.] 때문에 개발자들에게는 굉장히 불친절한 게임기였다. 결국 닌텐도의 하드웨어 관련 수장인 다케다 겐요(竹田玄洋, 1949~)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닌텐도 64를 만들었을 때, 진보한 게임을 만들려면 기술적으로 어려워지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판단은 틀렸다. 순간적으로 나오는 최고 속도가 아닌 꾸준한 속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서야 우리는 깨달았다."라며 '반성'한다고 말했다.[* [[http://www.newsweek.com/its-hip-be-square-159157|뉴스위크 2000년 9월 3일 기사]]] 이 실패 경험은 이후의 게임큐브와 후속기들의 스펙과 개발 환경에 영향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닌텐도 64는 서드 파티의 지원 사격을 받지 못해 북미에 발매한 게임 수는 300여 개 뿐이다. 앞 세대기인 슈퍼 패미컴용이 1,400여 개, 경쟁 기종인 플레이스테이션용이 3,000여 개의 게임들을 발매한 것을 보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